우리 손으로 만든 첨단 무기체계로 세계의 하늘을 지키는 K-방공벨트! 그 시작은 해외에서 도입한 나이키, 호크 미사일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금성정밀공업은 민간기업 최초로 미국 연수를 통해 배운 기술로 창정비를 시작했다. 장비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손으로 만져 보면서 무기체계의 원리와 구성을 터득해 나갔고, 그렇게 습득한 지식은 아낌없이 후배들에게 전수되었다. 바로 이상옥 전 본부장이 금오공장(현 구미하우스)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였다.
1978년 1월 2일에 금성그룹 공채로 들어왔는데 그때는 그룹에서 신입사원을 뽑아서 각 계열사로 배정하는 방식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웃음)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방위산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뭘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금성정밀로 배정받고 연고도 없던 구미로 와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이상옥 전 본부장이 처음으로 맡았던 업무는 미국에서 도입한 호크와 나이키 시스템의 창정비 기획과 관리였다. 창정비라고 불리는 오버홀(Overhaul)은 단순 정비가 아니라 전체 부품을 뜯어내 검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새 부품으로 갈아 끼워 장비가 최상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창정비를 하면서 유도무기 작동 원리와 구성에 대해서 많이 배운 덕분에 국산 유도무기 개발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과 비교해 환경은 열악했지만 미국 헌츠빌에 연수를 다녀온 선배들과 함께 즐겁게 일했습니다. 이후에는 발칸 레이다를 다루면서 획득한 기술과 경험으로 독자개발 레이다 TPS-830K도 만들 수 있었어요.
| 초기 회사 생활을 회상하면서 이야기하는 이상옥 전무
1995년 LG정밀, 2001년 LG이노텍, 2004년 넥스원퓨처, 2007년 LIG넥스원으로 회사 이름이 세번 바뀌는 동안 생산 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민수 분야까지 사업이 확장됐고 남자 직원들만 있던 생산 라인에 여직원들도 들어왔다. 이상옥 전 본부장은 호크 생산관리 과장을 하다가 자재과, 품질관리과로 자리를 옮겨 민수용 선박 레이다 사업을 담당했고 시간이 지나 생산을 책임지는 임원이 됐다.
LG그룹 산하에 있을 때는 큰 변화가 없다가 LIG가 인수해 넥스원퓨처가 되면서 생산 라인도 늘어나고 전반적인 회사 문화가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넥스원퓨처 때 임원이 되어 생산본부장을 맡게 됐는데, 재임하면서 신궁 국산 탐색기 개발과 양산에 성공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유도무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탐색기 국산화 성공이 이후 이어진 유도무기 개발의 중요한 자산이 됐습니다.
| 2008년 10월. 적외선 검출기용 냉각기 개발 사업 착수회의
| 생산본부장 재직 시절 구미공장에서 고 구자원 명예회장에게 브리핑하는 이상옥 전무
무기체계는 기나긴 연구개발과 시험평가를 거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아야 양산을 할 수 있다. 연구개발 과정에서는 시제품 한 두개만 제작하면 되지만 수십수만 개를 동일한 품질로 생산해야 하는 양산에서는 시제품 대비 많은 것들이 바뀌기 때문에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일이 중요했다. 생산의 전반적인 과정을 모두 경험한 이상옥 전 본부장은 2008년부터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으면서 연구개발과 생산의 괴리감을 좁히는 데 힘썼다.
생산본부에만 있다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으면서 용인으로 올라왔어요. 이 시기에 천무, 천궁, 현궁, 홍상어 등 굵직한 연구개발과 양산사업이 동시에 진행됐고,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사업들이 대부분이라 연구소 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생산본부에 있을 때는 “부품 스펙이나 공정을 왜 이렇게 만들어 놨어?”하는 불만도 있었는데 막상 올라와서 보니 연구원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일하는 지 알게 됐습니다. 둘 다 경험해 본 덕분에 연구개발과 생산 현장의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웃음)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사원부터 시작해 생산본부장과 연구개발 본부장을 모두 거치며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이상옥 전 본부장은 모든 공을 함께 일한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돌렸다. 각 담당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믿고 지원한 것을 비결로 뽑았다.


생산본부장이 품질과 납기를 하나하나 따지고 전전긍긍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요? (웃음) 임원이 되고 나서는 현장에 믿고 맡겼습니다. 함께 일했던 후배들이 워낙 일을 잘하다 보니 저는 크게 걱정이 없었습니다. 다만 후배들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우산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생산본부에서 일을 시작한 덕분에 연구개발 업무를 할 때 머리 속에서만 구상하지 않고, 공정과 기술, 원가와 자재, 공급망까지 고려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옥 전 본부장은 돌이켜 보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얘기했다. 퇴임 이후 취미로 시작한 그림과 클래식 기타는 인생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동호회 전시와 공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보내고 있다. 최근 LIG D&A의 눈부신 성과를 언론과 지인들을 통해 접하며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 회사가 진입한 것 같아서 한때 몸담았던 일원으로 기쁘고 뿌듯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 눈물로 쌓아 올린 기술과 저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후배들이지만,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부단한 정진을 바랍니다.
| 이상옥 전무는 돌이켜 보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