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원 알쓸신방
해외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TV로 보고 대용량 데이터를 담은 메일도 편리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신의 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려주는 위성통신 덕분이다. 이번호 < 넥스원 알쓸신방 >에서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경쟁으로 시작해 오늘날 군 위성통신에 이르기까지 위성통신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살펴본다.
위성통신의 시대를 앞서 예언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의 원작자는 SF문학사의 3대 거장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아서 샤를 클라크(Arthur Charles Clarke)이다. 그는 인류 문명사에 몇 가지의 큰 업적을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통신위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것이다. 1945년 10월 〈Extra-Terrestrial Relays ― Can Rocket Stations Give Worldwide Radio Coverage?〉라는 논문을 무선통신 잡지 < 무선세계, Wireless World >에 기고하여 정지궤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논문은 ‘라디오나 TV 신호는 비용과 기술적 문제 등으로 대륙 간 통신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것을 어떨까? 만약 로켓을 초속 5마일로 쏘아 올린다면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고 지구 둘레를 도는 제2의 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무선송수신기를 설치하면 장거리 무선통신의 중계국 역할을 할 수 있다. 궤도상의 위성 3개를 이용하면 지구 전체에 통신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당시 과학기술의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으나, 현재 전 세계 통신망의 중요 수단이 된 통신위성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적 개발로 발전한 위성통신 기술
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Спутник-1)’ 발사를 성공시키며 인공위성 시대의 막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대립각을 세우던 미국은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소식에 충격을 받았고 우주 개발을 위한 기초 교육부터 예산까지 각종 제도 개혁을 진행했다. 4개월이 지난 1958년 1월, 미국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Explorer-1)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경쟁이 가열되면서 인공위성 분야에 대한 기술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적인 개발은 군사목적의 위성 개발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상업용 위성 개발에도 영향을 끼쳤다. 1962년 7월 10일 미국 AT&T 벨연구소가 개발한 최초의 상업용 통신위성 텔스타 1호(Telstar 1)가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발사된 다음날인 7월 11일, 텔스타 1호는 미국 동북부 메인(Maine)주 앤도버(Andover) 기지국 밖에 걸려 있던 성조기를 프랑스 쁠뢰뫼르 보두(Pleumeur-Bodou) 기지국으로 중계했다. 실제 통신이 가능한 시간은 최대 20분 남짓이었지만 지구에서 보낸 TV 신호를 증폭시켜 다시 지구로 전송하는 중계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2년 후 세계 최초 정지위성인 신컴 3호(Syncom 3)를 이용해 동경올림픽을 미국에 생중계하는 성과를 도출해냈다. 아서 샤를 클라크가 제시한 통신위성 개념이 20년 만에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1967년 8월 워성턴에서 상업통신 위성부분의 설계, 개발, 운용 및 유지보수에 관한 업무 수행 및 위성을 통한 국제 통신망 구축을 위해 설립된 ‘국제통신위성기구’(INTELSAT,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Satellite Organization)에 의해 Early Bird란 별칭이 붙은 인텔셋 1호(Intelsat 1)가 대서양 상공의 정지궤도 상에 안착되면서 본격적인 위성통신의 장이 열렸다.
1970년대에 이르러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도 자체적인 위성통신 시스템을 구축했고, 위성을 이용한 미국- 인도 간 직접 방송 실험이 성공하기도 했다. 1970년 후반에는 정지궤도 인공위성통신 서비스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기구(인말새트, Inmarsat)가 설립되면서 무선 주파수 사용 시의 질서 유지, 기술·조작 상의 문제에 대한 연구 및 개선책 마련, 각 나라들의 전기통신체계의 개발 지원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지상 이동통신 시험 성공과 국제 이동통신(지상, 항공) 서비스가 개시됐다. 위성통신은 방송과 이동통신 단말기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며 대중화 되었다.
대한민국, 세계에서 22번째로 상용 위성 보유국가가 되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울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고도의 정보통신서비스가 요구되면서 우리나라도 위성통신시스템 기술과 관련 기반기술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그 당시 전문가들은 독자적으로 우리만의 위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으며, 정부는 1989년 12월에 국내 위성통신방송 사업추진계획을 확정하였다. 1990년부터 위성통신방송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1995년에 무궁화 1호(KOREASAT 1)가 발사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2번째로 상용 위성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실용적인 통신위성 개발은 1995년 무궁화 1호를 통해 시작되었고, 2호, 3호를 거쳐 2006년에 민군복합 위성인 무궁화 5호가 발사되었다. 무궁화 5호는 한반도 중심의 서비스를 벗어나 한류 콘텐츠를 동남아 국가에 직접 송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LIG넥스원의 군 위성통신체계 단말 개발 기술력
2006년 한국통신에서 개발한 무궁화 5호는 우리나라 최초로 군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정지궤도인 민군복합 위성이다. 우리 군은 적의 전파방해를 받지 않고 언제든지 장거리 통신과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주고 받기위해 독자개발을 통해 군 위성통신체계(ANASIS, Army Navy Airforce Satellite Information System)를 구축하였다. ANASIS의 단말 장비는 총 5종으로 전략 제대에 고정 설치되어 운용하는 고정용 단말장비, 이동후 고정 운용하는 차량용 위성단말 장비(LIG 넥스원 개발)는 주파수 대역별(X, Ka)로 2종과 개인 휴대가 가능한 휴대용 단말 장비, 함정과 잠수함에서 위성통신이 가능한 수상함/수중함용 단말 장비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군 위성통신은 현재 2020년 전력화를 목표로 군 위성통신체계-II 체계개발이 진행중에 있다. 군 위성통신 분야는 무인기, 유도무기, 휴대폰형 위성통신 체계 등에 확장 적용을 위한 개발이 진행 중 혹은 진행 계획이다.
LIG넥스원은 2종의 차량용 위성단말의 성공을 통해 대한민국 1세대 군 위성통신체계 구축에 기여하였다. 후속으로 군 위성통신 체계-II 탐색개발(2011년~13년)에서 다대역, 수상함, OTM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기술력(다대역 안테나 기술, Low-profile 안테나 기술, RF 고출력 증폭 기술, 안테나 안정화/추적 기술 등 위성통신 기반 기술)을 확보하였다. 군 위성통신체계-II 체계개발(~2020년)에서는 기축적된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위성통신 체계종합과 다대역, 수상함, OTM 등의 신규 단말, 차량용(X, Ka), 고정용, 수상함, 수중함 등의 성능 개량 단말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